ⓒ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Flick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Flick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1세기 전 맹위를 떨친 '스페인 독감'은 1918년부터 1920년까지 대유행한 인플루엔자의 통칭이다. 세계 인구의 약 27%에 해당하는 5억 명이 감염되었으며 사망자 수는 5000만~1억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페인 독감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당시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던 다른 나라들은 적국에 내부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전시검열로 인플루엔자 유행을 숨긴 데 비해,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스페인에서 유독 관련 기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주요 증상은 인후통·두통·열과 같은 전형적인 독감 증상으로 처음에는 사망자 수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유행이 시작될 즈음엔 증상이 세균성 페렴으로 이어지면서 환자의 피부가 검게 변하고, 수시간~며칠 내 사망하는 등 한층 심각해졌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대개 2세 이하의 영아들이나 65세 이상의 노인 등 면역력이 떨어지는 연령의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인플루엔자 사망자 수를 연령별 사망 곡선으로 나타내면 영아와 노인 사망자가 많은 'U자'를 그린다. 

그런데 당시 의료계는 확산 속도가 빨라 일반적으로 병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고령자나 허약한 사람만큼이나 '젊고 건강한 성인'의 사망률이 높았다고 믿었고, 그 통설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스페인 독감 관련 정보를 찾아보면 최근까지도 "스페인 독감은 20~30대 젊은층 사망률이 높았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스페인 독감 대유행 시기 기저질환이 없는 건강한 젊은층의 사망이 많았다는 통설은 사실일까? 

당시 사망자의 골격을 조사한 최근 연구에서 이 통설이 실제와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관련 논문은 국제학술지 'PNAS'에 게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PNAS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PNAS

캐나다 온타리오주 맥마스터대 고고학과 아만다 위슬러 박사 등 공동 연구팀은 1918년 9월~1919년 3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Cleveland)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81명과 그 이전에 사망한 288명, 총 369명의 유골을 법의학적 방식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이 사망자 골격 조사에서 주목한 것은 사망 당시 나이와 정강이 뼈에 나타나는 골막 병변이었다. 신체적 외상·감염병·영양 부족과 같은 건강 문제로 몸에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염증이 발생하고 그것이 치유될 때 새로운 뼈 형성을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정강이뼈에 진행 중인 골막 병변이 보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허약하다고 여겨진다. 

조사 결과, 이미 골막 병변이 치유된 사람과 비교해 진행 중인 골막 병변을 가진 '허약한 사람'의 사망률이 스페인 독감 팬데믹 이전뿐만 아니라 팬데믹 중에도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팬데믹 동안 허약한 사람의 사망 위험은 건강한 사람의 2.7배에 달했고, 그것은 젊은층도 예외가 아니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Flick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Flick

이 결과는 '스페인 독감의 경우 젊고 건강한 성인의 사망률이 노인이나 허약한 사람만큼이나 높았다'는 통설은 잘못된 것이며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젊은층은 원래 건강상태가 나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만, 이번 연구는 클리블랜드 지역 사망자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정강이뼈에 생긴 병변의 정확한 이유를 특정하지 못하는 사례 등 일부 한계가 존재한다. 

위슬러 교수는 과학 매체 라이브 사이언스(Live Science)에 "코로나19 팬데믹이나 흑사병 등에서 나타난 추세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독감 역시 건강상태와 사회경제적 지위의 격차가 사망률 상승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저작권자 © 데일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