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김혜경 기자] ‘1인 가구’는 지금까지 소비시장 주 타깃에서 소외된 존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 명’이기 때문에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1인 가구보다는 표준 가구 유형인 3~4인가구가 업계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했다. 몇 년 전만해도 싱글을 위한 상품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싱글족들은 할 수 없이 필요 이상의 물건을 구매한 후 그 중 절반은 버리곤 했다.


‘마케팅 사각시대’에 놓여 있었던 그들이 최근 주류 소비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업체들은 ‘소비 블루칩’이라 불리는 1인 가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각종 맞춤형 마케팅으로 열렬한 구애를 하는 중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만들어놓은 소비문화에 소비자가 따라가는 양상을 보였다면 현재는 싱글족들이 부각되면서 소비자가 오히려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1인 가구의 수는 무서운 기세로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가구 비율은 26%에 달했다. 올해는 27.1%를 기록했고 2025년 31.3%, 2035년 34.3%까지 오르는 등 계속해서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서울지역 1인 가구 비율은 지난해 처음으로 40%를 돌파했다.


‘혼자 사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등장한 신조어가 있다. 바로 ‘포미족(ForMe)'이다.?▲건강(For health) ▲싱글족(One) ▲여가(Recreation) ▲편의(More 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로, 이들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어떠한 대가도 지불할 준비가 돼있다.


포미족은 기존 싱글족이 진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싱글족이 소비패턴을 ’필요‘에 맞췄다면 포미족은 ’기호‘에 중심을 두고 소비를 한다. 이들의 소비 문화는 ‘단순 소비’라기 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들은 자신과 취향이 맞으면 서슴없이 지갑을 연다. 공연을 좋아하는 이들은 20만원짜리 티켓을 몇 번씩이나 예약하고, 고가 디저트를 즐기는 이들은 1만8000원에 달하는 작은 롤케잌 하나를 망설임없이 구매한다. 또 일명 ‘키덜트족(Kid+Adult)'이라 불리며 장난감에 푹 빠진 어른들은 몇 십만원을 호가하는 피규어를 여러 개 수집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도대체 저걸 비싼 돈주고 왜 구입하는지 의문이 들지만 이유는 단 하나. ‘자기를 위한 만족’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소비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활 방식이다.


실제 조사에서도 1인가구는 왕성한 소비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소득대비 소비 성향은 80.3%로 나타났다. 이는 3인(69.9%), 4인(76.0%) 등 다인 가구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포미족의 탄생 배경에는 경제·사회적 불안감이 핵심 요건으로 작용했다. 사치로 표방되는 싱글족 문화가 역설적이게도 ‘불황’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 경제 성장기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확신감이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현재의 만족은 참으면서도 장밋빛 미래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기 침체기에 있는 현재 상황 속에서 젊은 층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현재의 행복이 그들에게는 더 중요하게 됐다.


기존 소비 패턴이 변화하면서 업계의 마케팅 방식도 색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형마트 할인 행사 전단지에는 여태껏 보이지 않던 품목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생필품이나 매출 규모가 큰 대품 광고가 주였던 전단지에 향초나 네일케어 등 미용제품들이 전면에 배치되고 있다. 광고 트렌드도 싱글족의 입맞에 맞춰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포미족이 선호하는 대표 품목인 향초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0.8% 늘었다.


또 대형마트의 전체 매출은 나날이 감소하지만 오히려 편의점은 성장하는 것도 포미족의 영향이 크다. 대형마트는 지난해 기준 매출성장률이 -3.4%를 기록한 반면 편의점 업계의 지난해 매출은 8.7% 성장했다.


이에 편의점들은 간편식, 소량구매 등 1인 가구를 겨냥한 제품들을 왕성하게 내놓고 있다. 편의점 CU의 도시락 매출이 전년대비 43.4% 늘었고,?GS25의 경우 간편식 매출이 77.2%나 증가했다.


최근 경기침체와 높게 치솟는 물가로 인해 소비자들은 가뜩이나 얇아진 지갑을 붙들고 생각 중이다. 그들은 무엇에다 투자해야 가장 높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불경기로 인한 경제적 제약과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고픈 소비 욕구가 맞물려 포미족이 탄생했다. 유통업계는 이들 중 한 명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과거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1’ 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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