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송협 편집국장] 임진왜란 당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을 피해 도성 한양을 버리고 달아났던 선조는 명나라 국경을 마주한 의주성을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그로부터 400년이 흘러 1950년 6월 한국전쟁 당시 서울로 입성한 북한군을 피해 줄행랑을 쳤던 이승만 정권의 마지노선은 부산이었다.

돌이켜보면 형편없는 지도자들이었지만 이들에게 공통점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마지노선을 분명히 정했다는 것이다.

마스크가 없으면 감히 불안해서 외출을 할 수 없다. 평소 게을렀던 손 세척은 이제 습관이 됐으며 친구들과 왁자지껄하며 보냈을 주말은 이제 집에서 TV나 보며 지내는 시간이 됐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발병 이후 사람들은 삶의 일부분을 잃었다고 한다. 친구들과 만남을 위해서는 중무장을 해야 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비장한 각오가 요구된다.

메르스 확진자는 오늘까지 165명으로 늘었고 사망자도 3명이 늘어 23명이 됐다. 메르스 감염 의심자로 격리된 사람들은 6729명이란다. 다행하게도 격리에서 해제된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확진자 10명 중 1명이 사망할 만큼 높은 치사율을 나타내고 있다.

신문지면과 방송에서는 연일 메르스로 도배되고 있어 TV를 켜는 순간 사람들은 하루를 찌푸리고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악수도 못하겠다고 토로한다.

이러다 대한민국이 좀비(Zombie)의 세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여름철 호러영화의 대명사인 좀비 영화 속 장면처럼 정부와 보건당국의 외면과 은폐 속에 바이러스 숙주 보균자의 입자가 허공에 퍼지면서 순식간에 혼돈의 세상으로 돌변하는 무서운 장면이 오버랩(Overlap)되는 것은 이제 억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부가 새로 등장한 메르스 슈퍼전파자 후보군에 노출된 사람들의 최장 잠복기가 이달 말 집중됨에 따라 이 시기를 메르스 확산의 마지노선 삼고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한다.

당초 정부는 지난 2일만 하더라도 2차 감염이 마지노선이라 큰소리 쳤다. 지역감염 우려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30번째 환자인 3차 감염자가 병원 내 감염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정부가 호언장담했던 마지노선은 궤멸됐다.

메르스를 차단하기 위한 마지노선은 이미 붕괴됐는데 정부는 또 한번 마지노선을 운운하고 있다. 극한 사지에 몰린 상황에서나 볼 수 있는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마지노선, 그 최후의 보루를 우리 정부는 꽤나 숨겨 놓고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오락가락 메르스 방역 정책을 도대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이 정부의 수장이면서 메르스 사태의 모든 책임을 ‘정부’에 전가하는 대통령은 삼성서울병원 근처는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국무총리 깃발을 거머쥔 황교안 총리도 국회 통과 첫날부터 부산스럽게 현장을 누비며 자신이 메르스 컨트롤타워를 자처하고 있지만 그 역시 삼성서울병원 만큼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입만 열면 거짓을 일삼는 정부, 실효성 있는 대안마련은 없으면서 권한만 앞세우는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반감은 나날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조선 중기 문신 허균(許筠)선생이 집필한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보면 ‘천하지소가외자 유민이이 민지가외 유심어수화호표(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民之可畏 有甚於水火虎豹)’라는 글귀가 있다.

풀이하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백성이다. 백성이 두려운 것은 물과 불보다 더 무섭고 호랑이와 표범보다도 무서운 것이다”고 정의한다.

한 줌도 되지 않는 권력을 믿고 국민을 기망하거나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속이려 한다면 국민들은 언제든지 호랑이와 표범처럼 돌변해 위정자들의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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