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광등·싸이렌까지…경찰보다 무서운 레커차


[데일리포스트=김혜경 기자] #직장인 백남희(31·가명)씨는 지난 금요일 오후 지방에 거주하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던 중 후방에서 요란한 싸이렌을 울리며 광란의 질주에 나선 레커차(wreckercar)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린 아찔한 경험을 했습니다.


주말을 앞두고 몰려든 일반 차량들을 헤집고 광속으로 내달린 레커차는 규정된 속도와 차선을 위반하며 종횡무진 한 탓에 도로 위 차량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일명 ‘도로 위 무법자’란 수식어가 붙은 레커차입니다. 가벼운 접촉사고나 대형사고가 일어난 곳에서는 어김없이 달려드는 레커차의 위험천만 불법주행은 이제 다반사가 됐습니다.


◆ 레커차 불법운행 면허취소 대상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사고현장을 내달리는 레커차의 위험성에 대해 불안과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상황은 바뀌지 않고 레커차의 횡포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남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레커차의 불법운행을 단속해야할 경찰도 생계형 운행을 핑계로 모르쇠로 일관하다 보니 레커차 업계는 마치 특권이라도 부여 받은 듯 도가 넘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고 차량을 인수하기 위해 먼저 사고지점에 도착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레카차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레이싱을 하고 있습니다. 사고 때문에 극심한 정체구간을 넘나들기 위해 경찰, 소방차 등 국가에서 인정한 비상차량 전용 경광등과 싸이렌을 울리는 편법도 자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고차량 확보를 위해 무섭게 질주하는 레커차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에 걸쳐 중앙선 침범과 불법유턴, 신호위반, 속도위반은 물론 갓길 주행에 심지어 역주행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불법이며 면허취소에 해당되지만 어찌된 일인지 경찰과 단속기관은 이를 묵인하거나 모르쇠로 방관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전문 김인철 변호사는 “레커차들은 기본적으로 중앙선 침범과 고속도로 갓길 운행, 신호위반과 역주행 등 불법행위가 심각한데 중앙선 침범만 하더라도 벌점이 30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하루만에 면허취소 누적벌점인 121점을 충분히 넘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레커차 불법행위 왜 근절 안 되나?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레커차들의 목숨을 건 도로 위 레이싱은 왜 근절되지 않고 있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근본 문제를 견인업 시장이 가진 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견인 시장의 절대 법칙은 현장에 먼저 도착한 레커차가 사고 난 차량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위험천만한 운전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임자’라는 식의 무한경쟁주의가 업계에서 통용되는 논리기 때문입니다.


사고차량을 차지한 레커차는 자신의 단골 정비업체에 차량을 끌고 갑니다. 해당 정비소에서 일반적으로 수리비의 20~30% 정도를 수당으로 가져가는데 이동 거리에 따라서도 액수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시장이 이같이 형성된 건 레커차 ‘등록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입니다. 수요는 한정돼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견인업체만 늘어났다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김기복 시민교통안전협회 대표는 “현재 견인차 제도는 누구나 등록을 해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오픈돼 있는 형태인데 이것이 공급 과잉을 부추겼다”면서 “그들이 난폭운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치 사냥감 하나를 놓고 독수리 몇 마리가 동시에 먹잇감을 공격하는 행태와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정비업체와 레커차의 친분은 자동차 검진 시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현행법상 일반 차량에 황색 등 이외에 다른 색의 경광등 혹은 사이렌을 부착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그러나 레커차들은 이같은 관계를 이용해 차량 불법부착물 단속도 교묘히 피해갑니다.


자동차 정기 검진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교통안전공단에 직접 가서 검사를 받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위탁받은 정비소에서 받는 것입니다.


견인업체들은 보통 후자를 이용합니다. 위탁을 받은 정비업체들은 평소 레커차에게 오히려 부탁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엄격한 단속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불법부착물에 대해 눈을 감아 주게 되고 레커차들은 사이렌과 경광등을 단 채로 도로를 누비고 있습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레커차들이 난폭운전을 하는 행위 자체를 단속하는 방법 밖에 없다”면서 “사실 레커차 단속은 해당 운전자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경찰 측에서도 단속을 그렇게 많이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 공권력의 미온적인 단속도 한 몫


레커차 곡예운전의 원인이 시장의 무한경쟁 구조에 있었다면 이들의 행동이 더 과감해질 수 있었던 데는 미온적인 단속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김기복 대표는 “현행법 위반 시 영업이 타격이 갈 정도의 엄격한 처벌을 가해야 하는데 현재 과태료 몇 푼 내면 풀려나니까 이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면서 “공권력의 느슨한 단속이 문제를 더 크게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레커차들은 현장에 빨리 출동하기 위해 119 혹은 112의 통화 내용을 엿듣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면서 “그들이 경찰보다 사고 현장에 먼저 갈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경찰청 교통안전계 관계자는 “레커차의 경우 특별단속 기간을 따로 정한 후 일괄적으로 단속을 실시한다”면서 “역주행 등 해당 교통법규 위반 시 벌금 100만원을 부과하는 등 관련 처벌을 내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사실 교통법규 위반 문제는 근절이 녹록치가 않은데 견인차 사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만약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또 다시 단속 계획을 세우는 방법도 고려해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도로에서 역주행 중인 레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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