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김혜경 기자] 진나라를 중원의 통일국가로, 진왕(秦王) 영정(?政)을 시황제(始皇帝)로 만든 역사적 이벤트의 주역은 이사(李斯·원어발음:리쓰)라는 인물입니다. ‘진시황을 지배한 재상’이라 평가받는 그는 강력한 법가(法家) 통치술로 봉건제도를 종식시키고 진나라를 중앙집권체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진나라를 중앙집권체제로 바꾸고 통일제국의 기틀을 세운 이사는 실권자임에도 불구하고 환관 조고(趙高)의 함정에 빠져 요참형(허리를 자르는 형벌)과 삼대멸족을 당하는 어이없는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난 근본 원인은 출세욕에 대한 이사의 과도한 집착 때문입니다. 이에 그가 쫓은 이상이 과연 진나라의 부국강병이었는지 개인의 부귀영화에 불과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마천의 <사기-이사열전>에는 이사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두 마리의 쥐로 대변되는 이른바 ‘쥐 철학’이 이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습니다.


든든한 배경도 돈도 없었던 초(楚)나라 하급 관리 출신의 이사는 어느 날 관청에서 측간의 쥐가 오물을 먹으면서 인기척에 두려움에 떠는 반면, 창고 쥐는 배불리 먹을 뿐만 아니라 사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것을 목격하면서 출세에 대한 야심을 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이사는 순자(荀子)를 찾아가 제왕학을 사사받은 이사는 자신의 꿈을 이뤄줄 곳으로 진나라를 점찍고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기 전 “가장 큰 비애는 빈곤이며 이익을 말하지 않고 ‘무위(無爲)’를 주장하는 것은 선비의 진심이 아니다‘고 언급합니다.


도교의 핵심인 무위는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세상을 등지는 학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현실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바라볼 것을 권합니다. 가난 탈출 등의 욕망도 자신 내면의 고유한 발상이라면 무위가 될 수 있는 조건은 갖춘 셈입니다.


관건은 꿈을 추구하되 그 자체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꿈이 세상을 바라보는 절대기준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좀 더 높은 차원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가 바로 무위입니다.


쥐를 스승 삼아 출세의 가도에 올랐던 이사는 평생 자신의 쥐 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습니다. 무위에 대한 왜곡을 꿰뚫고도 정작 자신도 무위를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권력에 중심에 섰을 때 좀 더 유연함을 보였다면 중국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이사는 시황제가 죽고 난 뒤 결국 대형 사고를 칩니다. 조고와 결탁해 황제의 유언을 조작하고 호해(胡亥)를 보위에 올리는 짓을 저지름으로서 그의 인생도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이사와 출신성분이 비슷한 조고는 권세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이사의 약점을 절묘하게 틀어쥡니다. “호해를 황제로 세우지 않으면 몽염(蒙恬)에게 승상 자리를 내놔야 하겠지만 본인의 계책을 받아들인다면 오래도록 지체 높게 장수할 것”이라는 조고의 달콤한 말에 이사는 넘어가게 되고 진나라의 붕괴를 앞당기게 됩니다.


자신의 영달에 더 관심이 있었던 그는 군주의 대외 이미지 관리에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범인에 불과했던 제환공(齊桓公)을 패자로 만든 관중(管仲)과, 건달이었던 유방(劉邦)을 한고조로 만든 장량(張良)에 비해 이사는 ‘홍보실장’ 역할이 부족했습니다.


‘지도자가 법을 남용할 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이 전무한 법가의 근본 문제점은 제외하더라도 이사가 방치한 시황제의 폭군 이미지가 진나라 멸망을 앞당기는데 일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권모술수의 대가였던 그는 확실히 대인의 품격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까 두려워 동문인 한비(韓非)를 죽인 점, 사상탄압인 ‘분서갱유’를 주도했다는 점, 간신과 결탁했다는 점 등으로 인해 결국 역사 자체가 비극을 맞았습니다.


통일 진나라의 흥망성쇠는 이사의 인생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개인의 욕망과 역사의 흐름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 결과입니다. 그러나 옛 6국 후예들에 의해 통일 후 채 20년을 넘기지 못하고 멸망한 진나라는 이사의 벼락출세처럼 일장춘몽에 불과했습니다.


이사는 형 집행 전 함께 끌려 나온 아들을 보면서 “내가 너와 함께 다시 누런 개를 끌고 동쪽 문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그는 생애 마지막 자리에서 과연 역사에 대한 반성을 했을까요? 아니면 단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후회만을 표출했을까요? 이사의 인생은 현재 한국 정치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사진=나무위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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