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한국의 4차산업 대응력은 일본보다 밑돌아”

[데일리포스트=신다혜 기자] “한국은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은 높으면서도 그 대안은 규제개혁 일변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보급률이나 5G의 최초 상용화가 우리나라의 미래 IT 주도권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막연한 규제개혁 프레임에서 벗어나 규제와 혁신 사이의 동학(dynamics)을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정책 대안이 시급합니다.” (미래산업 정책연구원 김종원 책임)

최근 스위스 UBS(Union Bank of Switzerland)는 OECD 국가 45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이 25위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는 전 세계 인터넷보급률 1위, 인터넷 속도면에서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이른바 IT강국의 수식어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다.

UBS가 분석한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정도를 가늠하는 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술수준 23위 ▲교육 시스템 19위 ▲노동시장 유연성 ▲83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반면 세계 주요국 가운데 스위스가 1위를 차지했으며 뒤를 이어 싱가포르 2위, 미국 5위, 일본 12위, 유럽 13위, 그리고 중국은 28위로 25위인 한국의 뒤를 바짝 추적하고 있다.

사진설명=OECD 45개국 4차산업혁명 대응 지표 / 데일리포스트 DB
사진설명=OECD 45개국 4차산업혁명 대응 지표 / 데일리포스트 DB

OECD 주요 45개국을 대상으로 비교 분석한 이번 4차 산업혁명 대응 지표에서 우리나라가 25위를 기록하고 있어 중위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 유럽 그리고 중국 등 핵심 경쟁국의 선전에 비교하면 말 그대로 바닥을 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T인프라 세계 1위 한국…문제는 소프트웨어 경쟁력 ‘부재’

국내 IT 인프라 수준은 OECD 주요 국가들과 비교할 때 가히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가 OECD 국가를 대상으로 ICT 인프라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IT인프라는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국내 IT 인프라 수준이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데는 인터넷 평균 속도가 21.6Mbps(초당 메가바이트)로 독보적인 속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대역 인터넷 보급률 역시 1위를 기록해 명실공히 ICT 분야의 독보적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사진설명=OECD 주요국의 4차산업 기술 지표 순위 / 데일리포스트 DB

그러나 여기까지다. 국내 IT 인프라 수준은 OECD 국가 가운데 최고봉을 지키고 있지만 새로운 인터넷 주소 체계인 IPv6(인터넷 프로토콜 버전6) 도입률은 상대적으로 1.7%에 불과해 도입률 47%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벨기에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CDN(콘텐츠 전송 네트워크) 기업인 아카마이코리아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터넷 평균 속도면에서 한국은 부동의 1위를 기록했고 뒤를 이어 노르웨이(23.6Mbps)가 2위, 스웨덴이 22.8Mbps로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IPv6(인터넷 프로토콜 버전6) 도입률은 OECD 45개국 중 38위라는 굴욕적인 성적을 거뒀다.

테크원 인터넷 네트워크 김원석 부문장은 “현재 사용 중인 IPv6(인터넷 프로토콜 버전6)인데 국내 인터넷 주소 체계는 IPv4(버전 4)로 이는 앞으로 늘어날 인터넷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 때문에 ‘연결성’이 강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IPv6는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OECD 주요국 4차 산업 패권 다툼 본격화…한국 규제 폭탄

그렇다면 전 세계 전무후무할 만큼 인터넷보급률과 빛과 같은 속도를 자랑하며 IT강국을 대변하고 있는 한국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지표가 추락한 원인은 무엇일까?

IT 관련 업계는 가장 큰 원인을 서비스 분야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기술발전에 제동을 걸고 4차 산업 관련 기술 개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공유경제와 원격진료, 핀테크 등 관련 기술이 규제에 가로막혀 성장이 불투명하고 4차 산업 현실을 외면한 정부의 정책과 문턱 높은 자금지원 역시 한국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전략에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전 세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독일의 경우 일찌감치 ‘인더스트리 4.0’을 국가 산업 혁신의 최대 과제로 내걸고 미래 역량이 엿보이는 스타트업과 스마트팩토리 등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독일 뿐 아니라 중국 역시 ‘중국 제조 2025’ 정책을 통해 4차 산업 선진국 독일과 손을 잡고 협업을 통해 미래 산업 시장 주도권 경쟁에 나서고 있다.

과거 전 세계 IT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 역시 ‘로봇 新전략’과 ‘산업재흥플랜’ 등 산업 진작 정책을 바탕으로 IT 강국 패권 재기를 노리고 있다.

미래산업 정책연구원 김종원 책임은 “하드웨어를 설치하고 운용하면 인터넷보급률과 스마트폰, 반도체에서 강세를 보이는 국내 업계는 실제 소프트웨어는 처참할 만큼 저조한 성적을 보인다.”면서 “IT강국이라는 국내 현실은 4차산업 혁명이라는 거울 속에 드러난 초라한 민낯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IT강국의 명성이 무색할 만큼 국내 4차산업 지표가 수준 이하로 추락한 현상은 기술과 통신, 생명공학 등 관련 업종 M&A에서도 저조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 4차산업 혁명 관련 M&A는 지난 3년간 12%에서 경색된 반면 중국은 624%로 가파르게 성장세를 나타냈다. 뒤를 이어 미국이 115%, 그리고 독일과 일본은 각각 122%, 37%대 지표를 그리면서 모두 한국 보다 높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결국 IT인프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은 4차산업 혁명 성과의 수단인 M&A에서도 경쟁국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종은 지능형 ICT 연구센터장은 “국내 4차산업 혁명 대응 지표가 낮은 원인을 ‘규제’라는 평가는 지나치다.”면서 “네거티브 규제나 규제프리존을 통해 규제 자체를 개혁해야겠지만 이해관계자의 협력과 소통, 플랫폼 정부로의 기능 재정립 그리고 민간이 혁신 의지 제고 등 대안 마련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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