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정태섭 기자]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2008년 79.6세에서 2017년 기준 82.7세로 2년 이상 증가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기대수명과 증가폭이 남성보다 높아 80대 중반까지 늘어났다.

의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고령자들의 신체 기능 유지는 점차 수월해지고 있지만 인간의 ‘뇌’는 사정이 다르다. 모든 병이 그렇겠지만 발병 후 치료 보다는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한데 흔히 노인성 치매(痴保)라고 불리는 알츠하이머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뇌 세포는 한번 손상이 되면 재생이 어렵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은 65세 이상에서 주로 발병, 65세 이상 노인의 10명 기준 0.5명~1명 정도 발생하는 심각한 질병이다. 인지기능 및 기억력 저하, 성격 변화 등을 수반한다.

알츠하이머병의 위험 요소로 알려진 고령·여성·가족력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University of East Anglia, UEA)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씨 히어로 퀘스트(Sea Hero Quest)’라는 어드벤처 게임을 통해 알츠하이머를 조기에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결과는 23일(현지시각)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됐다.

어드벤처 게임 '씨 히어로 퀘스트' [사진= 구글플레이]
어드벤처 게임 '씨 히어로 퀘스트' [사진= 구글플레이]

알츠하이머병의 대표적 증상은 ‘기억력 저하’지만 이를 발견한 시점은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기억력 저하보다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증세인 ‘공간적 지향성 감퇴' 징후를 발견하는 데 이 게임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씨 히어로 퀘스트는 독일 통신회사 도이치 텔레콤이 대학 연구팀 등과 공동으로 개발한 게임이다.  실제로 이 게임은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어떻게 공간을 탐색하는가’를 연구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게임 플레이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알츠하이머병 연구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게임 내용은 다음 동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플레이어(늙은 항해사)가 가상의 배를 조종해 바다를 항해하는 스토리다. 

플레이어가 섬과 빙산 미로를 통과하는 과정은 0.5초마다 연구 데이터로 변환된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씨 히어로 퀘스트의 2분간 게임으로 수집한 연구 자료는 실험실 실험으로 얻은 데이터 약 5시간 분량으로, 그동안 전세계 유저에 의해 모인 자료는 실험 데이터 1700년분에 필적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은 영국에 거주하는 50~75세 연령층의 플레이어 약 2만 7000명에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준 점수를 형성했다. 그리고 실험실에 모인 60명 그룹에게 씨 히어로 퀘스트 게임을 하도록 해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조사했다.

60명의 실험 그룹은 사전에 유전자 검사를 받았으며, 31명의 피실험자들이 치매유발 유전인자로 알려진 아포이4(APOE4)를 갖고 있었다. 약 4명 중 1명이 보유한 APOE4 유전자는 알츠하이머병이 젊을때 발병할 위험이 3배나 높다.

연구팀을 이끈 마이클 혼버거(Michael Hornberger) 교수는 "실험 결과 APOE4 유전자를 보유한 참가자는 공간탐색 작업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게임에서 효율적인 도착 루트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기억력 감퇴가 없는 경우라도 게임을 통해 공간적 지향성을 체크해 조기에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알츠하이머병의 유전적 위험이 없는 사람들은 기준 점수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결과를 보였다.

혼버거 교수는 "2050년까지 전세계에 약 1억 35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치매에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조기에 치매 위험을 감지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는 기억력이 감퇴되지 않은 상태에서 탐색 능력 저하를 발견해 조기에 알츠하이머병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씨 히어로 퀘스트는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며 오큘러스 VR 헤드셋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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