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스타트업 ‘안키(Anki)’ 파산...가정용 로봇은 왜 성공하기 어려울까?

[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인간과의 의사소통에 중점에 둔 로봇들의 실패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미국 가정용 로봇 제조업체 안키(Anki)가 결국 파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으로 조작하는 손바닥크기의 장난감 로봇 ‘코즈모(Cozmo)’와 자율주행 보급형 홈로봇 ‘벡터(Vector)’로 알려진 안키의 경영 파탄이 남긴 교훈은 결코 적지 않다.

미국 스타트업 안키의 가정용 로봇 '코즈모'와 '벡터' (사진=안키)
미국 스타트업 안키의 가정용 로봇 '코즈모'와 '벡터' (사진=안키)

이는 현재 로봇 업계가 당면한 어려운 현실을 대변한다. 수백 명이 실업자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과연 이런 로봇을 원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냉혹한 답변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안키의 파산을 계기로 로봇업계는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에 봉착했다. 사람들은 가정용 로봇에게 도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많은 소셜 로봇....‘가정’은 냉혹했다

소셜 로봇(Social Robot)은 인간과의 소통에 중점에 둔 감성 중심의 로봇을 의미한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 컴퓨팅 등 첨단 기술이 융합되어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는 등 적절한 대응을 하도록 설계돼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소셜 로봇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으며 폐업을 선언하는 로봇 업체도 줄을 섰다. 공상과학(SF) 영화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기대감은 한껏 높아졌는데 비싼 가격을 주고 구입할만한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만해도 최초의 소셜 로봇이자 춤추는 로봇으로 유명했던 ‘지보(Jibo)’와 메이필드 로보틱스(Mayfield Robotics)가 제작한 ‘쿠리(Kuri)’ 등 스타로봇의 시장 철수가 결정됐다.

시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업계에서 사라진 가정용 로봇(아시모, 큐리, 지보, 벡터 )
시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업계에서 사라진 가정용 로봇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지보, 큐리, 벡터 모두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는 로봇이 아니라는 것. 

미국의 ‘룸바(Roomba)’나 삼성전자의 ‘파워봇’. LG전자의 ‘코드제로’와 같은 로봇 청소기는 가사(청소)를 도와주는 로봇이다. 1960년대 TV 애니메이션 ‘젯슨스’에 등장하는 ‘로지’는 가정부 로봇이며 SF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의 로봇 앤드류(NDR-114의 애칭) 역시 설거지·청소·요리·정원손질 등 모든 집안일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도우미다.  

2000년에 개봉한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에 등장하는 로봇 앤드류(NDR-114의 애칭)
2000년에 개봉한 영화 ‘바이센티니얼 맨’에 등장하는 로봇 앤드류(NDR-114)

하지만 소셜 로봇은 이러한 실용적인 기능을 전혀 제공하지 못한다. 아무리 귀엽고 독특한 개성을 갖추고 있다한들 연달아 실패했다는 것은 ‘귀여움’만으로는 소비자에게 결코 어필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기계는 인간의 동료가 아닌 어떤 노동을 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부분이다.

가령 삼성과 LG전자는 최신 로봇청소기를 출시하면 분당 몇 번 회전하는지 얼마나 간편하게 보관할 수 있는지, 세탁은 얼마나 쉬운지 등을 강조하며 한국형 주거 환경에 최적화됐다고 홍보한다. 소비자가 가전을 보는 기준은 ‘기능’이고, 결국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셜 로봇이 실패한 두 번째 이유는 로봇에게 가정은 그야말로 ‘최악의 환경’이라는 사실에 있다. 로봇 공학에서 ‘무질서’라고 정의되는 상태에서 로봇은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생산 현장에는 이미 수십 년 전에 도입됐지만, 이는 공장이 구조화되어 있고 로봇 작동에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고 정해진 작업을 반복하기만 한다면 갑자기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일반 가정에는 단차가 존재하고 어린 아이도 있으며, 바닥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흩어져있다. 이는 진로상의 방해물을 스스로 제거하지 못하는 가정용 로봇의 큰 걸림돌이다.

◆ AI 스피커의 성공 배경 “로봇의 존재감을 없애라”

가정용 로봇이 주춤하고 있는 사이 시장은 아마존 에코(Echo)와 구글홈(Google Home)으로 대표되는 비교적 저렴한 인공지능(AI) 스피커로 쏠리고 있다.

특히 인간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에서 AI 비서는 시장 외연 확대를 견인하며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마존의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의 시리를 비롯해 국내에서 출시된 SK텔레콤의 누구, KT의 지니, 삼성의 빅스비 등 최근 몇 년간 다양한 AI 음성 서비스가 등장했다.

이러한 AI 비서는 로봇 청소기처럼 특정 용도가 존재하고 또 그것을 아주 훌륭히 해내고 있다. 게다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어질러진 집안 물건과 씨름할 필요도 없다.

AI 플랫폼 '빅스비'와 AI스피커 '갤럭시 홈'  (사진:삼성전자)
AI 플랫폼 '빅스비'와 AI스피커 '갤럭시 홈' (사진:삼성전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기계로 인식되는 로봇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탑재한 AI 비서를 ‘그’ 혹은 ‘그녀’로 인격화해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느낀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가지고 오거나 빨래를 널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정리할 수도 없는 가정용 로봇에게 과연 움직이는 능력이 필요할까? 알렉사처럼 똑똑하지 않다면 로봇과 상호 작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가정용 로봇의 궁극적인 형태는 인간의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또 가정용 로봇은 AI스피커처럼 빠르게 제품을 업데이트할 수 없다. 하드웨어인 로봇은 일단 시장에 출시하면 문제가 있어도 즉시 대처하기가 어렵다.

결국 가정용 로봇의 매력은 오직 ‘귀여움’에 있다. 큐리와 벡터가 말하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흥미롭다. 하드웨어이기 때문에 목소리가 탑재된 AI 스피커보다 훨씬 더 ‘개성’을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들은 "로봇이라면 가전처럼 뭔가를 할 수 있어야한다"는 선입견을 버리지 못했다. 가정용 로봇이 ‘쓸모없다’고 느끼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가정용 로봇은 인간과의 사이에 ‘이상하고 새로운’ 관계를 다지는 과정에 있다. 아마도 로봇에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팔과 다리가 장착될 미래에는 마치 로봇청소기처럼 집의 일부로 느끼고 그것이 로봇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릴지 모른다.  

그간 등장했던 소셜 로봇들은 비록 인간의 마음을 훔치지는 못했지만 인간과 로봇과의 구체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분명한 기여를 했다. 언젠가는 재미있는 장난감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소셜 로봇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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