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티딘’ 사태로 드러난 식약처의 안전관리 능력

[데일리포스트=송협 선임기자] “반복되는 의약품 원재료의 안전성 문제와 식약처의 사후약방문식 대응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의료인과 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발사르탄 사태 당시에도 의사들이 환자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는 동안 식약처와 제약사들은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 박종혁 대변인)

제목 그대로 최근 식약처의 행보를 비춰볼 때 많은 국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국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의약품 성분 등 유해물질에 대해 가장 먼저 정밀하게 검사하고 조사하는 국가기관이 명확한 해답 없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역류성 식도염이나 위궤양으로 진탁, 큐란과 같은 위장약에 함유된 라니티딘(ranitidine)계열에서 발암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가 검출됐다는 소식은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앞서 지난 13일 美 FDA(식품의약국)에서 발표한 반면 식약처는 국내 유통 중인 잔탁에서 NDMA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3일이 지난 16일 발표했다.

전 세계 식품의약 분야 전문 기관인 FDA의 관련 발표와 확연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FDA 뿐 아니라 유럽 식품의약 기관 등에서는 발암물질이 검출된 만큼 신속하게 발표하고 대응에 나선 반면 대한민국 식약처는 전혀 상반된 답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10일이 지난 26일 오전 식약처는 출입기자들을 불러 모아 자신들이 부정했던 ‘잔탁’ 등 국내 유통 라니티딘 성분 의료의약품 269개 품목에서 발암 우려 물질이 검출돼 제조와 수입 및 판매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내 유통 중인 잔탁에서 NDMA가 검출되지 않았다며 밝힌 이후 10일만에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NDMA는 불순물이기 때문에 제품에 불균질하게 혼합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시험결과도 이에 따라 편차가 크게 나타난다.”면서 당초 “발암물질 검출 안됨”에 대한 변을 밝혔다.

대한민국 식품의약품 정밀 검사 기관인 식약처의 일관성 없는 발표에 관련 리니티딘 성분의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식약처의 발표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시각도 지배적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에 위해가 될 수 있는 약품의 시험 결과가 불과 10일만에 다른 해석이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은 정부의 식품의약기관인 식약처를 믿을 수 없다는 성토가 빗발치고 있다.

‘잔탁’과 ‘큐란’ 등 라니티딘 성분의 약을 복용하고 있는 144만명에 달하는 환자들은 불과 10일만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야만 했다. 정부 기관인 식약처 한 마디에 의사로부터 처방받고 복용했던 약을 끊어야 할지 고민에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는 반응도 지배적이다.

식약처의 일관성 없는 행보는 비단 ‘라니티딘’에만 국한돼 있지 않고 있다. 식약처가 국민의 식품과 의약 등 안전 여부를 검사하고 결과에 대해 언론 공표를 하고 있지만 착오의 검사결과로 멀쩡한 기업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 식약처의 ‘신뢰도’는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실제로 국내 생명공학 기술의 최정점을 찍으며 국제적 이슈가 됐던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 논란에서 식약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식약처는 지난 2017년 인보사 심사에서 ‘임상결과 불충분’이라는 결과를 통보했다가 두 달 만에 이를 번복하고 허가를 승인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살충제 계란’과 ‘라돈 침대’ 그리고 ‘발사르탄 함유 혈압약’ 사태 등 식약처의 기준 없는 행정 때문에 국민의 혼란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사슴'을 '말'이라 강조한 이 얼토당토 않는 말의 기원은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을 보필하던 천하의 권신(權臣)이자 환관(宦官)인 조고(趙高)에서 비롯된 것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고 원칙적인 행정에 임해야 할 식약처가 국민을 농락하는 듯 일관적이지 못한 처신을 보이는 작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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