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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미국과 구소련을 필두로 힘 대 힘의 대결이 난무하던 냉전 시대에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대규모 핵 실험이 반복됐다. 1950~1960년대에 행해진 강력한 핵 실험으로 미국산 꿀에는 지금까지도 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앤메리대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 데일리포스트 이미지 출처=Nature Communications

윌리엄앤메리대의 짐 케이스트(Jim Kaste) 교수는 2017년 신입생 세미나에서 수십 년 전 핵 실험으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이 현재의 식품에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과제를 진행했다. 케이스트 교수는 신입생들이 가져온 사과·메이플 시럽·견과류 등 다양한 식품을 감마선 검출기로 조사해 식품에 포함된 세슘의 방사성 동위 원소인 '세슘 137'을 측정했다.

세슘에는 여러 동위원소가 있는데, 원자핵에 중성자를 82개 가진 방사성 동위원소 세슘-137은 원자핵 분열 시 발생하는 생성물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세슘 137 대부분이 핵 실험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성된 것이며 방사능 오염물질 중 가장 위험성이 큰 물질이다.

케이스트 교수 예상대로 학생들이 가져온 음식에는 극미량의 세슘 137이 검출돼 수십 년 전 핵 실험으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이 여전히 식품에 함유되어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노스캐롤라이나 시장에서 구입한 꿀을 감마선 검출기로 측정했더니 생각보다 높은 세슘 137이 검출됐다. 케이스트 교수는 "처음에는 용기에 문제가 있거나 감지기 고장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꿀은 다른 식품보다 약 100배 방사선 농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높은 수준의 세슘 137이 꿀에서 검출된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케이스트 교수 연구팀은 미국 동부 시장과 양봉장에서 여과되지 않은 순수한 꿀 샘플을 수집해 분석했다. 

테스트 결과, 메인주에서 플로리다주에 걸쳐 수집한 122개의 샘플 중 무려 68개의 샘플에서 세슘 137이 검출됐다. 이는 냉전시대에 행해진 핵 실험의 흔적이다. 당시 핵 실험은 대부분이 태평양 마셜제도와 북극해 노바야제믈랴제도에서 이루어졌고, 이 외에 뉴멕시코주와 네바다주에서도 진행됐다. 

총 500회 이상의 핵실험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방출됐지만 모든 폭발에 동일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방출된 것은 아니다. 

케이스트 교수는 "태평양과 러시아 실험장에서 생성된 세슘 137의 양은 뉴멕시코주와 네바다 폭파로 생성된 양보다 400배 정도 많다"고 언급했다. 핵 실험 폭발로 방사성 물질은 대기 중으로 흩뿌려졌고 이 중 일부는 성층권까지 도달해 바람을 타고 더 멀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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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중의 세슘 137이 지상에 도달하는 주요인은 강우지만 꿀에 포함된 세슘 137이 높게 나타난 지역은 연간 강수량이 많은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농도의 세슘 137를 포함한 꿀은 토양에 포함된 칼륨 농도가 낮은 지역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연구팀은 발견했다. 

식물의 중요 영양인 칼륨은 식물 대사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세슘 원자와 칼륨 원자는 많은 유사점이 있어 토양에 포함된 칼륨이 부족하면 식물은 칼륨의 대안으로 세슘을 흡수한다"며 "그 결과, 세슘 방사성 동위 원소인 세슘 137이 식물에 흡수되고, 이를 꿀벌이 수집하면서 꿀의 세슘 137 농도가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식물이 토양에서 세슘 137을 흡수하는 현상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수십 년 전 핵 실험으로 생성된 방사성 물질이 실험장에서 수천㎞ 이상 떨어진 장소까지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꿀에서 검출된 세슘 137은 인체에 유해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영향이 없는 극미량이라도 곤충 등 다른 생물에는 유해할 가능성이 있다.

케이스트 교수는 "세슘 137이 꿀벌 개체 수 급감과 관계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면서도 "방사성 물질 오염이 곤충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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