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

[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로마인이 사용하던 별장에서 발굴된 용기의 내용물 분석 결과 '1500년 전 변기'로 확인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단지 내부 물질 속 굳어진 퇴적물에 포함된 기생충 알을 근거로 단지의 용도를 밝혀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고고과학 리포트 저널(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게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 있는 '제라체의 별장(Villa of Gerace)'으로 명명된 유적에서 4세기~5세기에 사용된 목욕탕과 저장고, 가마 등이 발견됐다. 유적에는 이러한 시설 이외에도 유물도 출토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높이 약 32cm, 직경 약 34cm의 단지도 포함됐다. 

아래 이미지는 유적을 위에서 촬영한 것으로, 붉은 원으로 표시된 부분에서 단지가 발굴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

발견 당시 단지는 토양에 묻혀 깨진 상태였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에서 고고학을 연구하는 로저 윌슨 교수는 "이런 종류의 둥근 모양의 용기는 로마 제국에서 상당히 널리 존재했지만, 다른 증거가 없어 저장 단지라고만 알려졌다. 공중화장실이나 그 부근에서 다수 발견돼, 실내용 변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지적되었지만, 지금까지 확증을 얻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단지 내부의 고형화된 잔류물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장내 기생충인 편충(Trichuris trichiura)의 알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 편충은 회충과 함께 오랜 기간 사람의 몸을 감염해 온 장내 기생충이며, 충란은 고대 미라의 장내와 유적의 흙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연구팀은 "단지에 인간의 대변이 담겼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며 "로마인의 휴대용 변기, 즉 요강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목욕탕 시설에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의를 위해 입욕자가 목욕탕 시설을 떠나 별장 화장실까지 가지 않고, 이 단지를 화장실로 대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또 단지 크기를 고려했을 때 단독 변기가 아닌 구멍이 있는 목제 의자 아래에 단지를 놓고 화장실로 만들어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래 사진은 발굴된 단지를 복원한 것이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

분석 대상이 된 고형물은 단지가 여러 차례 사용되면서, 대변이나 소변에 포함된 미네랄이 고형화한 것이다. 편충의 알은 편충에 감염된 사람의 배설물이 미네랄에 혼입된 형태로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소피 레비나우는 "충란은 단지 표면에 형성된 미네랄층에 갇혀 수 세기 동안 보존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언급했다. 또 현미경 분석에 참여한 케임브리지 대학 티어니 원은 "충란이 퇴적 1500년 후에 발견됐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다만, 로마 제국의 유적에서 발굴된 유사한 형태의 단지가 모두 변기로 사용됐는지는 불명하며, 단지가 곡물이나 물을 저장하거나 유골함으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연구를 주도한 케임브리지 대학 기생충 전문가인 피어스 미첼 박사는 "박물관에 전시된 로마 용기 바닥에서도 광물화된 고형물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이번 기술을 통해 변기로 사용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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