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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자연과의 접촉이 정신건강을 개선한다"는 주장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지만, 지난 10년간의 주요 연구에 숨겨진 편향(bias) 때문에 자연의 정신건강 개선 효과가 보편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떠올랐다.

미국 연구팀은 2010년~2020년에 걸쳐 발표된 자연과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를 정밀 조사해 동료평가를 마친 총 174건의 관련 논문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분석한 결과, "자연과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에 숨겨진 편향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이 지적한 편향이란 "자연과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 대부분이 부유한 국가에서 진행된 것이며 중저소득 국가 사람들은 거의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수집한 연구 중 97%가 세계은행 분류에서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만2235달러 이상의 고소득 국가로 자리매김한 국가에서 이뤄졌으며 GNI가 3996달러 이상의 상위 중소득국에서 이뤄진 연구는 2.9%, 1006달러 이상의 하위 중소득국은 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위 중소득국에서 실시된 자연과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는 2건에 불과하며, 1건은 인도에서 다른 1건이 이란에서 진행됐다.

세계은행 분류상 지수가 산출되는 217개 나라와 지역 중 고소득 국가에 해당하는 것은 80개국, 상위 중소득국이 55개국, 저소득국은 27개국이다. 고소득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전체로 보면 크지 않지만, 자연과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 대부분이 고소득 국가에서만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레이첼 굴드(Rachelle Gould) 미국 버몬트대 박사는 "(이들 연구에는) 인류의 비율이 고려되지 않아 무엇이 보편적이고 무엇이 특수한지 알 수 없다. 이러한 간극은 연구가 영향력을 갖고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인류의 행복을 향상시키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연구가 이루어진 고소득 국가 상당수는 미국·유럽 등이었으며 그 외에도 중국 한국 싱가포르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서구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유사한 국가가 많았다. 또 중국 등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자연에 둘러싸인 농촌이 아닌, 자연이 적은 도시에서 이루어진 경향을 보였다. 

아울러 인종 통계를 보고한 연구는 전체의 62%에 불과하며, 인종을 밝힌 연구의 경우 평균보다 백인의 비율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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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심리학 연구 대부분이 "서양인이나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문제시되고 있다. 이들 집단은 심리학자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사람들인 동시에, 원래 개인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는 '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서구적 정신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서양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심리학 연구 결과는 세계 전체 인구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문 공저자인 카를로스 안드레스 가예고스 리오프리오(Carlos Andres Gallegos-Riofrío) 버몬트 대학 박사는 "이러한 연구는 비교적 큰 글로벌 도시에서 행해지고 있다. 논문을 보면 기본적으로 서양에서 진행된 연구의 공식을 재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적 뉘앙스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즉 연구 대상의 인종·문화적 편중은 문화마다 다른 녹지와의 관계성을 무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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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 박사는 같은 미국인이라도 오랜 세월에 걸친 차별 등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흑인 커뮤니티는 백인 커뮤니티와는 다른 녹지와의 관계성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또 서구적인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자연관을 가진 원주민도 대부분의 연구에서 배제되었으며, 캐나다와 뉴질랜드에서 진행된 두 연구에만 10% 미만으로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가령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주변의 원주민들은 자연이나 강에 법적인 인격을 인정하는 자연권을 옹호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앞서 포함되지 않았던 사람들도 대상으로 한다' ▲'실험참여자의 민족성을 기록한다' ▲'정신건강 및 자연과의 연관성 연구에 문화적 배려를 포함한다' 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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