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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배터리로 구동하는 전자제품은 배터리가 방전되면 사용할 수 없지만, '절전모드'로 전환하면 배터리 소진까지의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뇌도 먹이 부족 상태가 지속되면 '에너지 절약모드'로 전환돼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뇌는 글루코스(포도당)에서 생산한 아데노신 삼인산(adenosine triphosphate, ATP)을 이용해 정보처리를 하고 있으며 체중에서 차지하는 뇌 비율은 2% 정도에 불과하지만, 하루 칼로리 소비량은 350~450kcal로 평균 기초대사의 20~25%를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뇌는 공복 시에도 칼로리 소비량이 변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인간이나 다른 동물에게 굶주림은 큰 위협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뇌가 응급상황에 빠지면 칼로리 소비량을 억제하는 에너지 절약모드로 바뀔 것으로 추정해왔다. 

2016년 연구에서는 배고픈 쥐의 뇌 활동은 음식 이미지와 더 강하게 연관됐으며, 식사를 하면 음식 이미지에 대한 뇌 활동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도 유사한 연구 결과가 있으며, 실험 참여자가 배고플 때는 음식 사진에 대해 일부 뇌 영역이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Neuron(2016)

또 일시적 기아 상태가 아닌 만성적 기아 상태에서는 뇌 프로세스가 감소돼 에너지 소비를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2013년 연구에서 제시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Science(2013)

이 연구에서는 기아 상태의 초파리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장기억 형성'과 관련된 뇌 회로 활동을 중단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팀이 해당 뇌 회로를 억지로 활성화시킨 결과, 굶주린 초파리는 더 빨리 죽었다. 즉, 뇌의 에너지 절약 모드는 기아 상태에서의 소비에너지를 절약하고, 음식을 찾아 생존할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초파리와 같은 에너지 절약이 포유류처럼 훨씬 큰 뇌와 인지기능을 가진 동물에게도 존재하는지는 불분명했다.

이에 영국 에든버러 대학의 나탈리 로슈포르(Nathalie Rochefort) 박사 연구팀은 먹이를 3주에 걸쳐 제한하고 3주 전과 비교해 최소 체중이 15% 이상 줄어든 쥐로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서 연구팀은 실험 직전 먹이를 주고 쥐가 배고프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단기적인 기아 상태가 뇌 활동에 변화를 미치지 않도록 했다. 

실험에서 연구팀은 두 개의 검은 막대를 서로 다른 각도로 연결한 이미지를 쥐에게 보여주고 쥐 시각야에서 뉴런의 발화율을 관찰했다. 실험 결과 기아 상태에서 쥐의 뉴런 발화율은 충분한 먹이를 먹고 있는 쥐와 다르지 않았지만, 시각 정보에서 각도를 느끼는 정확도가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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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쥐를 물이 담긴 통로에 넣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막대 각도 이미지로 제시한 또 다른 실험에서도 기아 상태인 쥐는 막대의 각도를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져 적절한 진로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뇌의 에너지 절약 모드에서는 저해상도로 이미지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기아 상태인 쥐는 시각이 '저해상도'로 변화한 대신 뇌에서 ATP 소비량이 29%나 감소하는 뇌의 에너지 절약모드가 켜진다"며 "뉴런은 뇌피질 영역 전체에서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다른 감각도 시각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절약 모드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쥐에게 렙틴호르몬을 투여하면 시각의 에너지 절약모드를 강제로 해제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지방세포가 분비하는 렙틴은 소비에너지의 증대를 촉진하는 호르몬이기 때문에 렙틴 농도가 낮아지면 뇌가 기아 상태를 감지해 에너지 절약모드를 켜고 렙틴 농도가 높아지면 에너지 절약모드를 해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팀은 추정하고 있다. 

생물의학 연구에서는 쥐나 다른 실험동물을 일시적으로 기아 상태로 만들어 음식 보상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실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기아 상태가 뇌의 에너지 절약모드를 켜고 뇌 기능을 바꿀 가능성이 시사되면서 앞선 실험 결과도 에너지 절약모드로 인해 왜곡됐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듀크대 신경과학자인 린지 글릭펠트(Lindsey Glickfeld) 박사는 "동물의 지각이나 뉴런의 감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실험 계획이나 실험 해석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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