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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 지난 1만년 동안 인류사회는 거대하고 복잡하게 진화했다. 이를 촉구한 원동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가운데 미국 코네티컷 대학 진화인류학자인 피터 터친(Peter Turchin) 교수 연구팀이 정량적 검증을 위해 문화적 대진화의 이론적 틀에 근거한 역학 모델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해당 모델과 국제 과학 연구 프로젝트인 '세샤트(Seshat:Global History Databank)'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농업 생산성 향상'과 '군사 기술(특히 철제 무기와 기병)의 발명 및 도입'의 조합이 사회 진화와 강한 인과관계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거주인구의 증가와 분업이 가능해지고 사회가 복잡해졌다는 사실은 큰 이견이 없지만, 전쟁이 사회 복잡성를 촉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고고학계를 중심으로 대부분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터친 교수는 "무서운 전쟁이 인류사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우선 사회의 복잡성을 측정하는데 있어 ▲'해당 사회의 영역 크기' ▲'지배 계급의 복잡성' ▲'직업 군인·사제·관료의 존재 및 법전·재판 제도 등 정부의 전문성' 등 정량화가 가능한 3가지 지표를 설정했다. 

이후 세계 400개 이상의 사회 정보를 가진 세샤트(Seshat)에 고대 생활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가령 "질문:12세기에 남예멘을 지배한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1169-1252)에 풀타임 관료는 존재했는가? 답변:있었다" "현재 페루 근처에 존재한 후아리제국의 인구는 얼마였는가? 답변:10만~50만명" 이런 식이다. 

연구팀은 수백 개의 사회를 지역별로 30개로 나누고 군사 진화 정도와 농업 발전 상태 등 사회적 변수를 17개 항목으로 분류해 각각의 항목에서 얻은 데이터가 사회 복잡성으로 정의한 3개 지표의 성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그 결과 복잡해진 사회에 두드러진 요인은 '농업'과 '군사(특히 철제 무기와 기병)'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뛰어난 철제 무기를 갖추고 기병을 편성한 사회는 경쟁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나아가 상대를 압도하는 힘을 가진다. 이러한 경쟁은 사회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군대 계급을 구성하며, 다양한 자원과 늘어나는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 관료적인 정부를 조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 태평양 섬들에서는 '복잡화된 사회'가 수천 년 동안 번영한 반면 유라시아나 북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한 거대 제국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것이 정부가 계급화되고 전문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잉카제국도 예외 사례에 속한다. 연구팀은 이와 관련해 "잉카는 철과 말 없이 방대한 인구와 복잡한 통치가 가능했다. 이는 라마를 수송에 이용함으로써 경쟁자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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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구팀의 주장에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피츠버그대 고고학자 로버트 드레넌(Robert Drennan) 박사는 "설득력 있는 연구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농업과 군사가 어떻게 사회를 형성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제한적인 고찰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콜로라도대 볼더교의 인류학자 윌리엄 테일러는 "본 연구에서 승마(기승)가 기원전 1000년경 폰토스 카스피해 초원(Pontic–Caspian steppe)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연대와 장소는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다. 초기 승마사회의 상당수는 고고학적 단서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고학에 크게 의존하는 세샤트와 같은 모델에서는 과소평가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캘리포니아대 인류학자인 모니크 보거호프 멀더(Monique Borgerhoff Mulder) 박사도 "이번 연구는 역사에 대해 혁신적인 매크로 수준의 정량적 접근을 실시한 것"이라고 평가한 후 "농업과 군사 기술의 진보와 사회적 복잡성 사이의 영향을 확신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터친 교수는 "궁극적으로 전쟁이 인류사회의 복잡화에 영향을 준다고 해도 기뻐할 일은 아니다. 진화에 필수적인 것은 '경쟁'이지 '폭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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