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범 기업 대신 한국 재단이 배상금 지급
日 외무상, “한일관계 건전하게 되돌릴 결정”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NHK 뉴스화면 캡처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한국 정부가 6일 한일 양국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싸고 대법원 판결 이후 4년 4개월 만에 '제3자 변제' 해법을 공식 발표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 발표문'을 통해 2018년 10월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일본 전범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 중공업)에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를 대상으로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정부는 한일 양국이 1998년 10월에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인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란다"는 견해를 밝혔다. 

피해자들은 1941~1943년 일본 전범 기업에 강제 징용돼 노역에 시달리고 임금을 받지 못했다. 한국 대법원의 배상 명령에 일본 기업은 그동안 "강제징용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완전하며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되풀이해왔다. 

◆ 제3자 변제 확정...일본 참여 없어 

제3자 변제 방식이란 일본 가해 기업의 참여나 일본 정부의 사과 없이 한국 기업이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방식이다. 

현재까지 배상금을 받게 될 피해자는 총 15명으로, 정부가 이들에게 지급할 판결금은 지연이자를 합쳐 약 4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계류 중인 강제징용 관련 기타 소송도 원고가 승소하면 역시 피해자에게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할 계획이다.

재원은 한국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으로 마련하고, 앞으로 재단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재원을 확충할 방침이다. 포스코를 비롯해 한국도로공사, KT&G, 한국전력, KT 등 16개 국내기업이 재원 출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강제징용 피해 소송 대리인단 임재성 변호사는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희가 검토했던 여러 가지 안 중에 가장 하수의 안, 최악의 안(제3자 변제)이 결국 결정됐다"며 "순전히 한국 기업들만의 돈으로 소송에서 진 일본 기업의 채무를 면책시켜주는 안이며, 일본이 아무런 부담도 책임도 지지 않고 판결에서 진 자국 기업들을 면책시켰기 때문에 오늘은 일본 정부가 외교적으로 승리한 날"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 日매체, "韓정부, 관계 정상화 위해 해법 제시" 반색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확정하자 일본 매체들은 이를 긴급 속보로 타전했다. 

이날 일본 공영 NHK는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을 대신해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을 통해 배상금을 지불하는 해결책을 발표했다"고 속보로 전했다. 

매체는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대북 대응책 등으로 한미일 연계를 중시하는 윤석열 정권은 최대 현안의 해결을 서둘러 '전후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한일 관계 개선을 이루려는 생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다만, 일부 원고와 지원단체는 일본 기업의 사과와 배상이 먼저이며 재단 대체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어, 한국 정부는 계속 이해를 구할 방침이다"라고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한일 관계 악화로 이어진 문제 결착(해결)을 향해 크게 내딛었다"고 환영했다. 야후 재팬 메인을 장식한 이 요미우리 기사는 4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호응이 높았던 누리꾼 댓글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은 이미 다 지불했다. 그런데 대신 갚는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nod*****)
"모집공(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한국 국내 문제이며, 스스로 책임지고 보상하는 것이 당연한 대응이다. 또 일본이 사과할 것은 전혀 없다" (zer*****)
"지금 대통령이 퇴임하면 또 뒤집히지 않을까. 위안부와 징용공으로 물고늘어지는 무리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gax*****)
"대신? 뭘? 일본에는 (한국이) 대신 갚을 채무가 없다" (yosyos*****)
"한국 재단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정권이 바뀌면 구상권이 발생하기 때문에 재압류 가능성이 열려있다. 배상금 지급 의무가 한국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fdj*****)
"일본 측은 한국에 자국 기업이 지불할 채무가 없음을 확인하고 대신 내준다는 불쾌한 표현을 즉각 고쳐줄 것을 강력히 건의해야 한다"(鄭レノン)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배상 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판단했으며, 이는 한국의 사법적 판단과 상반돼 양국 관계의 악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NHK 뉴스화면 캡처

또 "문재인 전 정권은 일본과의 협상 없이 현금화를 위한 사법 절차를 진행했다. 일본 측은 현금화가 이루어지면 국교 정상화의 전제가 무너지고 관계 복구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며 " 윤석열 현 정권은 일본과의 외교적 대립을 피하면서 보상을 추진하는 해법을 모색해왔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번 해법으로) 양국은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엄격화 조치 등 여러 현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은 윤 대통령의 조기 방일을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보성향의 아사히는 한국 정부가 6일 일본 기업 배상금을 한국 재단이 대신 지급하는 해결책을 정식으로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측 해법 제시로 일본 정부는 95년 '무라야마 담화'와 98년 한일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15년 '아베 담화' 등을 근거로 역대 내각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에 대한 계승을 표명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산케이는 "한일 관계 개선을 앞세운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약 10개월. 최대 현안 일단락과 양국 '셔틀 외교' 재개 등을 목표로 조기에 관계 정상화를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日외무상 "한일관계 건전한 관계로 되돌려"
 
한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은 6일 오후 '제3자 변제' 해결책 발표에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약식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는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이어받고 있다"며 배상금은 지불하지 않지만, 과거 정권이 표명한 '반성과 사죄'를 계승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현재의 전략 환경에 비춰 안보 측면을 포함해 한일·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번 (한국 정부의) 발표를 계기로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의 교류가 확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현지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반도체 소재 구출규제 해제와 수출관리 우대국(백색국가) 회복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성 차원에서 나온 조치였다.

그러나 하야시 외무상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해제는 "노동자 문제와는 별개의 논의"라고 선을 그었다. 

저작권자 © 데일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