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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말의 '억양(accent)'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귀속 의식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투리가 없어지거나 전과는 다른 지역이나 집단의 억양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처럼 말의 억양이 바뀌거나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영국 레딩대학 제인 세터(Jane Setter) 교수가 온라인 학술저널 '더컨버세이션(Theconversation)'에 해설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타인과의 대화에서 사용하는 말의 억양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억양에는 물리적 요인뿐만 아니라, 의식적 또는 잠재의식적인 욕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음성학을 연구하는 세터 교수는 "사람의 억양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소속된 그룹과 닮아 가는 것이 연구로 확인되고 있다"며 "가령 일 때문에 호주에서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기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억양이 다소 바뀌게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 맞춰 억양을 바꾸는 것은 타인이 자신을 더 이해하게 하고, 스스로 새로운 커뮤니티에 적응하고자 하는 욕구나 필요성 때문일 수 있다. 

세터 교수는 "영국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4분의 1이 '억양'을 이유로 직장에서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며 "이런 이유 등으로 억양을 바꿀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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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환경에 맞게 억양을 익히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이다.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2009년 연구에서는 아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음소리 단계부터 자라는 환경에 맞춰 특유의 멜로디로 표현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키우는 사람들의 억양을 익히고 주위 사람들과 같은 억양으로 말하게 된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게 된 후에도 다양한 성장 단계에서 억양은 변화해 간다. 예를 들어 세터 교수의 동료 자녀는 미국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영국 남부로 이주해 학교에 입학한 뒤 '영국 남부 사투리'로 말하고 있다. 아이는 부모에게 '바른 영어'로 말하라며 남부 사투리를 가르치기도 한다. 

반면, 환경이 변해도 거의 억양이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말투가 자신의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세터 교수는 "억양을 주변 사람에 맞춰 집단에 귀속되는 것이 정체성에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는 반면, 억양 자체가 본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언급했다. 

또 드물긴 하지만 갑자기 말투가 외국어를 하는 듯 부자연스럽게 변하는 '외국어 말투 증후군(foreign accent syndrome)'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언어 장애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국 토박이가 뇌 손상을 입은 후, 마치 프랑스인이 영어를 하려는 것처럼 들리는 영어를 하게 된다.

이 질병은 대부분 뇌졸중이나 외상과 같은 뇌 손상이 원인이지만 2023년 3월에 보고된 사례에서는 뇌 이상이 관찰되지 않아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세터 교수는 "외국어 말투 증후군을 가진 사람을 외국인이라고 여겨 차별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억양을 주변에 맞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것도 이해가 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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