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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멕시코 일부 지역에는 약 4.8m~6m까지 성장하는 거대 옥수수 품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옥수수의 뿌리에서 나오는 점액이 화학적 비료에 기반한 기존 곡물 재배 방식을 크게 바꿀 수 있어 주목된다.  

BBC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 남부 작은 마을 토톤테펙(Totontepec)에서 재배되는 옥수수는 일반 옥수수 높이(2.4m~3m)를 훌쩍 뛰어넘어 최대 6m까지 자란다. 

이 특별한 옥수수는 수 세기 동안 현지 농가가 소중히 취급해 왔다. 가장 큰 특징은 지상에 위치한 뿌리에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점액이다. 

현지 옥수수 농가에서 일하는 톨렌티노 오르테가 리베라(Tolentino Ortega Rivera)는 “내가 이 옥수수 재배에 종사하기 시작한 것은 13살 때부터다. 어렸을 때는 옥수수 뿌리에서 나오는 점액을 가지고 놀곤 했다. 뿌리에서 나오는 점액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이 옥수수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점액을 방출하는 옥수수에 대한 소문은 과학자들의 귀에도 전해졌고 하워드 야나 샤피로(Howard Yana-Shapiro) 박사도 그중 하나였다. 직접 현지를 방문한 샤피로 박사는 엄청난 크기의 실제 옥수수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고 회상했다. 

옥수수를 관찰한 샤피로 박사는 "옥수수 뿌리에 점도 높은 점액질이 배어 나와 있었다. 이 점액은 마치 스스로 비료를 주는 것처럼 보였다"며 "실제로 농가가 인공 비료를 거의 주지 않아도 옥수수는 크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옥수수가 뿌리에서 나오는 점액으로 자가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이 '질소 고정(Nitrogen fixation)'이라고 강조한다. 

질소는 모든 식물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식물의 단백질과 엽록소의 주요 구성요소 역할을 한다. 이러한 질소는 공기 중에 다량으로 존재하지만, 그대로 사용하기 어렵고 활용하려면 암모니아·질산염·이산화질소 등 반응성이 높은 다른 질소화합물로 변환해야 한다. 이 과정을 '질소 고정'이라고 한다. 

질소 고정에 필요한 토양세균인 근립균(뿌리혹박테리아)과 공생하는 일부 콩과 식물을 제외한 많은 식물은 대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 등 질소 화합물로 변환해 이용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많은 지역에서 옥수수·밀·쌀·수수 등 다양한 곡물이 생산되지만 어떤 곡물도 자력으로 질소를 고정할 수 없다. 따라서 농가는 질소를 많이 포함한 화학적 비료를 대량으로 살포해 곡물에 영양을 공급하는 동시에 수확량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화학비료를 살포해도 많은 식물은 그 절반 정도밖에 흡수할 수 없고, 남은 화학비료는 수원을 오염시키고 부영양화에 의한 적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나라에서는 화학비료 구입조차 쉽지 않다. 따라서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에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식량난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미래 농업의 중요 과제로 꼽힌다.  

멕시코에서 발견된 질소 고정이 가능한 옥수수는 '올로톤(olotón)'으로 불리며 수세기 동안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비밀로 유지되어 왔다. 

샤피로 박사는 토톤테펙 지역사회의 협력을 얻어 올로톤을 연구했다. 멕시코 거주 과학자 및 토톤테펙 주민들과의 공동 연구 결과, 점액 속에 본래 흙 속에 있는 질소 고정균이 많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젤 형태의 점액은 질소 고정균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점액이 질소고정균 활동에 필요한 혐기성 환경을 만들고, 질소고정균은 대기 중 질소를 식물이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한다. 점액과 질소고정균의 작용으로 옥수수는 성장에 필요한 질소의 최대 80%를 그대로 공기 중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다.

한편, 올로톤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옥수수 권리에 대한 문제가 부상했다. 과거 연구에 따르면 해당 옥수수 종자는 멕시코의 토톤테펙 마을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확인됐다. 

윤리적 생물거래를 위한 조합(UEBT)의 마리아 줄리아 올리바(Maria Julia Oliva)에 따르면, 현재 올로톤 연구에는 사전에 지역 커뮤니티와의 동의가 필요하다. 또 상용화할 경우 이익의 일부를 지역 커뮤니티와 공유하는 협정을 맺어야 한다. 협정에는 "판매된 옥수수 씨앗 한개당 절반의 로열티를 기업이 지역 커뮤니티에 지불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후속 연구로 올로톤을 다른 품종과 교배시켜 질소 고정이 가능한 옥수수 신품종이 개발되고 있다. 다양한 기업 등이 참가한 연구개발 결과, 재배 소요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공기 중 질소의 약 40%를 고정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옥수수에서 그치지 않고, 질소 고정이 가능한 벼·밀·수수 등의 연구도 진행될 전망이다. 이러한 다양한 질소 고정 곡물 개발을 통해 화학비료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농업 혁신이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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