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상대적이며 멘탈게임’,‘승부는 장갑을 벗어봐야


[데일리포스트=이위인 기자] ‘골프는 멘탈게임’, ‘승부는 마지막홀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 골퍼나 골프팬들이라면 흔히 듣는 이야기다. 김세영(22·미래에셋자산운용) 박인비(26·KB금융그룹) 김인경(26·한화)이 이를 제대로 실감케 해줬다.


무대는 미국 하와이 오하우섬 코올리나 GC(파 72, 6383야드)에서 19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롯데챔피언십 대회 마지막 라운드.


김세영 등 3명의 한국낭자는 16번홀까지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김세영, 박인비, 김인경은 이때까지 11언더파 공동1위로 우승상금 27만달러를 놓고 한치 양보없는 승부를 이어갔다.


◆17번홀, 가장 유리했던 김인경 오히려 3퍼트로 보기범해


첫 번째 승부처는 17번홀(파4). 박인비의 세컨샷은 그린 옆 벙커에 빠졌고 벙커에서 친 세 번째 샷은 핀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파 세이브가 쉽지 않았다. 김세영은 투온에 성공했지만 핀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인경은 김세영보다 가까워 세 선수 가운데 가장 유리한 입장에 섰다.


김세영이 먼저 퍼팅에 나섰다. 그러나 긴장한 탓인지 너무 짧았고 파세이브가 쉽지 않은 상황을 맞았다. 다음은 김인경의 퍼트였는데 김세영과는 달리 너무 길었다. 그래도 박인비, 김세영보다는 핀과의 거리가 훨씬 짧아 여전히 유리한 입장.


다음은 박인비의 퍼팅. 긴 퍼팅은 라인을 타고 홀컵에 빨려 들어가며 파 세이브. 그 다음 김세영의 퍼팅도 홀컵 오른쪽을 타고 그대로 홀안에 떨어졌다. 역시 파 세이브.


앞선 선수들이 긴거리 퍼트를 성공하면 다음선수는 부담을 느끼기 마련. 김인경의 퍼트는 약간 당겨졌고 홀컵 왼쪽으로 지나갔다. 김인경은 보기를 범하며 1타차 2위로 내려앉았다.


가장 유리한 입장에서 가장 나쁜 결과를 낸 것이다. 골프는 상대적 게임이며 멘탈게임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세선수의 17번홀 플레이였다.


해저드


◆18번홀, 김세영 티샷 해저드행 너무 잘맞아 오히려 탈


두 번째 승부처는 정규라운드 마지막홀인 18번홀(파4). 티샷 IP지점 부근에 페어웨이가 있어 드라이버 대신 하이브리드나 아이언 티샷을 하는 홀이다.


김세영의 하이브리드 티샷은 제대로 맞았다. 그러나 김세영이 장타자인데다 방향이 너무 정확한 게 문제였다. 페어웨이 한복판을 가른 공은 계속 굴러 워터해저드에 빠지고 말았다. 긴 비거리와 정확한 방향은 모든 골퍼들의 꿈. 그러나 이게 오히려 화가 된 것이다.


박인비도 하이브리드를 잡고 힘차게 티샷을 날렸다. 페어웨이 약간 왼쪽 방향으로 날아간 공은 한참을 구르다 워터해저드 앞 러프에 멈춰섰다. 김세영처럼 한복판으로 갔으면 해저드에 빠질 공이었는데 왼쪽으로 향해 위기를 면한 것이다.


김인경의 드라이버 티샷은 두선수에 비해 거리는 짧았지만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세컨샷을 핀에 붙이면 1타차를 만회할 수 있었지만 김인경의 아이언샷은 그린 오른쪽 벙커를 향했다.


박인비의 두 번째 샷은 약간 길긴 했지만 온 그린에 성공했다. 1벌타를 받고 친 김세영의 세 번째 샷은 그린에 올라가지 못하고 엣지에 떨어졌다. 핀까지의 거리는 6m정도. 승부는 박인비의 우승으로 끝날게 확실시 됐다.


▶18번홀에서 김세영의 티샷이 페어웨이 한복판에 떨어진뒤 해저드로 굴러가고 있다(사진 위). 그린 엣지에서의 칩샷이 홀컵을 향해 가고 있다(가운데). 파세이브 칩샷이 성공하자 김세영이 클럽을 내던지고 두손을 번쩍 들어올려 환호하고 있다(아래).


◆기울었던 승부, 칩샷 성공으로 연장전 몰고가 첫홀서 샷이글로 마침표


박인비의 첫 퍼트는 홀컵에 거의 붙었다. 탭인 거리였지만 박인비는 마크를 하고 볼을 집어들었다. 챔피언 퍼팅을 위한 것이었다. 파퍼트를 남겨놓은 김인경은 우승경쟁에서 탈락했고 김세영의 네 번째 샷만 남았다.


김세영의 칩샷은 그린에서 바운드된 후 굴러가더니 그대로 홀컵에 떨어졌다. 멀어져 가던 27만달러를 여전히 곁에 붙들어둔 기적의 샷이었다. 공이 홀컵에 들어간 순간 김세영은 클럽을 내던지고 두손을 높이 치켜들며 환호했다.


기적의 샷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세영과 박인비의 연장전 첫 번째홀. 김세영은 핀까지 154야드(140m) 거리를 남겨놓은 지점에서 8번 아이언을 집어들었다. 클럽을 떠난 공은 그린에 떨어진뒤 홀컵으로 굴러들어갔다. 승부를 결정짓고 갤러리들과 골프팬들에게 ‘골프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준 샷이글이었다.


장갑을 벗은 김세영의 손에는 우승트로피와 27만달러의 상금이 적힌 패널이 들려있었다. 김세영은 경기후 인터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믿을 수가 없다.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선수가 믿기지 않는다니 갤러리들이나 중계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김세영, 박인비, 김인경의 마지막 2~3개홀은 골프의 묘미를 새삼 느끼게 해준 명승부로 기록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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